오래된 음료 패키지 연구

책상 위 작은 사치, 초기 캔커피 라벨이 말해준 것들

지식과 정보 보따리 2025. 8. 18. 15:33

책상 위 작은 사치, 초기 캔커피 라벨이 말해준 것들
맥스월하우스 캔커피 사진 = 식품음료신문

동서식품: 인스턴트 커피 제국의 확장

동서식품은 1970년대부터 한국 인스턴트 커피 시장을 사실상 장악한 기업이었다. 맥스웰하우스와 맥심 브랜드를 통해 다방과 가정에서 커피 문화를 대중화했지만, 1980년대 들어 직장인과 학생층을 겨냥한 새로운 포맷이 필요했다. 동서식품이 선보인 초기 캔커피 라벨은 인스턴트 커피와 동일한 색채 코드를 사용했다. 브라운과 베이지 계열이 주를 이루며, 브랜드 로고는 큼직하게 전면에 배치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라벨 전면에 원두 이미지를 배치하지 않고 오히려 **‘믿을 수 있는 브랜드명’**만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는 이미 인스턴트 커피를 통해 구축한 신뢰도를 캔커피로 확장하려는 전략이었다. 결과적으로 동서의 캔커피는 소비자에게 “익숙하고 안정적인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책상 위 작은 사치, 초기 캔커피 라벨이 말해준 것들
레쓰비 사진 = 롯테칠성음료

롯데칠성: 대중적이면서도 세련된 이미지

롯데칠성은 사이다와 탄산음료에서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1980년대 초반 캔커피 시장에 진입했다. 롯데의 초기 캔커피 라벨은 탄산음료에서 쌓아온 시각적 대비와 컬러 전략이 잘 드러난다. 금속 캔의 광택을 활용해 메탈릭 브라운을 전면에 내세우고, 제품명은 심플한 산세리프체로 큼직하게 인쇄했다. 특히 “Gold” “Mild”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소비자에게 ‘부드럽지만 고급스러운 커피’를 상상하게 했다. 이는 커피를 마치 맥주처럼 도시적이고 성숙한 음료로 포지셔닝하는 전략과 닮아 있었다. 롯데의 라벨은 동서의 보수적이고 신뢰 기반 전략과 달리, 젊은 직장인과 대학생에게 세련된 이미지를 어필하는 데 집중했다.

 

해태음료: 실험성과 차별화의 시도

해태음료는 1980년대 중후반에 캔커피 시장에 합류하며 독창적인 라벨을 선보였다. 해태는 기존 커피의 갈색 톤을 따르면서도, 보다 밝고 화사한 컬러를 접목해 ‘새로운 경험’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라벨에 커피잔 일러스트나 추상적인 그래픽 패턴을 넣어 단조로운 브라운 일색에서 벗어나려 했다. 또한 해태는 광고와 라벨에서 **“에너지와 활력”**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자주 사용했다. 이는 커피를 단순히 휴식용이 아니라, 마치 박카스 같은 활력 드링크의 성격까지 확장하려는 시도였다. 라벨 디자인에서도 전통적인 명조체 대신 둥근 고딕체를 사용해 보다 젊고 활발한 인상을 남겼다. 비록 시장 점유율에서는 동서와 롯데에 밀렸지만, 해태의 라벨 디자인은 이후 다양한 커피 음료 브랜드가 시도한 감각적 차별화의 선구적 사례였다.

 

초기 캔커피 라벨의 유산과 영향

동서·롯데·해태의 초기 캔커피 라벨은 서로 다른 전략을 보여주면서, 한국 커피 음료 시장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 동서는 브랜드 신뢰를, 롯데는 세련된 대중성을, 해태는 젊고 활력 있는 실험성을 각각 내세웠다. 이 세 가지 축은 오늘날까지도 한국 커피 라벨 디자인의 주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스타벅스 RTD가 보여주는 브랜드 중심주의, 칸타타의 프리미엄 대중성, 조지아 크래프트의 감각적 실험성은 모두 1980~90년대 캔커피 라벨에서 시작된 것이다. 당시의 라벨은 단순히 디자인적 선택이 아니라, 소비자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을 규정한 시각적 언어였다. 이 유산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며, 복고와 뉴트로 감성이 주목받는 오늘날, 오히려 더욱 재해석할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