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라벨 속 영어, 왜 그렇게 멋져 보였을까?
영어가 주는 세련됨과 도시적 상징성
1980년대 한국 음료 라벨 디자인에서 영어는 단순한 외국어 표기가 아니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며 ‘세계와 연결되고 있다’는 자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었고, 영어는 곧 국제화와 세련됨의 기호였다. 캔커피 라벨에도 ‘Coffee’, ‘Mild’, ‘Gold’, ‘Maxwell’, ‘Georgia’ 같은 단어들이 전면적으로 사용되면서, 소비자들은 단숨에 이 음료를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제품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제품명 자체는 한글로도 표기했지만 브랜드 로고나 주요 키워드는 대부분 영어였다는 점이다. 이는 “국산 제품이지만 세계적 감각을 담았다”는 상징성을 강조하려는 전략이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도구로서의 영문 로고
영문 로고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하는 강력한 도구였다. 동서식품의 ‘Maxwell’, 롯데의 ‘Let’s Be’, 코카콜라의 ‘Georgia’는 모두 고유한 영문 서체와 스타일을 개발해 소비자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었다. 특히 산세리프체는 모던함과 간결함을, 세리프체는 전통과 고급스러움을 상징하며 각각 다른 소비자 층에 맞게 활용되었다. 예를 들어, ‘Let’s Be’는 부드럽고 친근한 곡선형 로고를 사용해 젊은 층과 여성층에게 접근했고, ‘Georgia’는 미국적 감각의 굵직한 로고로 강한 존재감을 주었다. 라벨에 영어 로고가 들어가는 순간, 소비자는 그 제품을 단순히 음료가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 경험으로 받아들였다.
소비자 반응: 친근함과 거리감의 교차
당시 한국 소비자에게 영어는 매력적이면서도 동시에 다소 낯선 언어였다. 라벨에서 영어를 보는 순간 **“이건 세련된 음료”**라는 기대가 생겼지만, 발음하거나 읽기 어려운 경우에는 오히려 거리감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브랜드가 영문 로고 + 한글 보조표기를 병행했다. 예컨대, 라벨 전면에는 큼직하게 ‘MAXWELL’이 적혀 있지만, 하단에는 작은 글씨로 ‘맥스웰 커피’라고 병기한 식이다. 이는 영어의 국제적 감각과 한글의 친근함을 동시에 잡기 위한 전략이었다. 소비자는 영어를 통해 세계적 트렌드에 동참한다는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한글을 통해 안정감을 얻었다.
오늘날의 재해석: 글로벌에서 로컬로
현재 프리미엄 커피 RTD 시장에서도 영어 로고는 여전히 중심적이다. 그러나 과거처럼 단순히 “세계적”이라는 의미를 담기보다, 이제는 브랜드의 글로벌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로컬 감성을 반영하는 균형이 중요해졌다. 스타벅스 RTD는 영어 로고를 강하게 유지하지만, 한국 내에서는 ‘카페 라떼’, ‘카라멜 마끼아또’ 같은 한글 표기를 병행한다. 조지아 크래프트는 영어 로고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디자인 톤은 오히려 복고적이고 따뜻하게 풀어내어 한국 소비자 감성에 맞췄다. 즉, 영문 로고는 더 이상 단순한 ‘외국어 멋내기’가 아니라, 글로벌과 로컬을 연결하는 디자인 언어로 진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