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료 패키지 연구

당시 음료 라벨 속 손글씨체의 감성과 마케팅 효과

지식과 정보 보따리 2025. 8. 9. 18:00

1970~80년대 한국 음료 라벨에는 지금과 달리 ‘손글씨체’가 빈번히 사용됐다. 당시 인쇄 환경은 금속활자나 사진식자 방식이 주를 이루었고, 세밀하고 균일한 컴퓨터 폰트는 존재하지 않았다. 디자이너들은 인쇄 제약 속에서 브랜드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직접 붓이나 펜으로 쓴 글씨를 라벨에 적용했다. 손글씨체는 단순히 제품명을 표시하는 도구를 넘어, 소비자에게 첫인상을 각인시키는 중요한 시각 언어였다. 곡선이 살아 있는 필획, 잉크 번짐이 남긴 질감, 여백과 배열의 자유로움은 기계적으로 찍어낸 글자에서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을 전달했다.

 

손글씨체 라벨의 가장 큰 특징은 ‘제품의 성격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이었다. 해태 ‘코코아’ 라벨은 붓펜으로 쓴 듯한 부드러운 필체와 둥근 획을 사용해 따뜻하고 달콤한 맛을 연상하게 했다. 반면 롯데의 탄산음료 ‘레몬라임’은 가늘고 경쾌한 곡선체를 적용해 청량감과 가벼운 이미지를 부각했다. 라벨의 글씨는 크기를 크게 잡아 병 중앙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소비자가 진열대에서 멀리서도 제품명을 쉽게 인식하게 만들었다. 세부 장식보다 필체 자체가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되었기 때문에, 글씨체만 보고도 제품을 구분할 수 있었다.

 

손글씨체는 소비자와 브랜드를 심리적으로 가깝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기계적인 활자보다 사람이 직접 쓴 듯한 글씨는 신뢰와 친근함을 전달했다. 특히 건강음료나 가족을 타깃으로 한 제품에서 이 효과가 두드러졌다. ‘미에로화이바’ 초기 라벨의 필기체는 부드럽고 건강한 이미지를 부여해, 마치 친구가 건네는 손 편지처럼 제품이 소비자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느낌을 주었다. 반대로 ‘박카스’ 같은 자양강장제는 굵고 힘 있는 붓글씨체를 사용해 강인함과 에너지를 전달했다. 서체 선택이 단순한 디자인 요소가 아니라, 제품 포지셔닝과 마케팅 전략의 일부였던 셈이다.

 

당시 음료 라벨 속 손글씨체의 감성과 마케팅 효과
밀키스 사진 = 롯데 칠성
당시 음료 라벨 속 손글씨체의 감성과 마케팅 효과
밀키스 사진 = 롯데 칠성

 

 

기억하기 쉬운 손글씨체는 ‘구전 효과’에도 기여했다. 광고를 보지 않아도 “라벨 글씨가 ○○처럼 생긴 음료”라는 식으로 입소문이 퍼질 수 있었고, 이는 당시 치열한 음료 시장 경쟁에서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1970년대에는 간판과 전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한 붓글씨풍이 많았고, 자음과 모음을 굵게 쓰고 획 끝을 날카롭게 처리해 힘과 존재감을 부여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만화 타이틀 같은 굵고 둥근 글씨체가 유행했으며, 이는 TV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산업의 영향을 받아 특히 어린이 음료와 탄산음료 라벨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1990년대 이후 컴퓨터 폰트가 보급되면서 손글씨체 사용은 줄어들었다. 균일하고 깔끔한 글씨가 인쇄 효율을 높였지만, 대신 브랜드 개성이 약화되는 부작용도 있었다. 2000년대에는 일부 레트로 제품에서만 손글씨체가 사용되었고, 본격적인 부활은 2010년대 후반 복고 열풍이 다시 불면서 찾아왔다.

 

최근 복고 마케팅이 활발해지며 손글씨체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70~80년대의 손글씨 라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이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감성으로,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의 재현으로 다가간다. ‘밀키스’ 리뉴얼판이나 ‘갈아만든 배’ 복각 라벨이 대표적인 사례다. 손글씨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대의 문화와 감성을 담아내는 하나의 언어였다. 라벨 위의 글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 방식, 미적 취향, 소비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오늘날 디지털 폰트가 아무리 발전해도 손으로 쓴 글씨가 주는 따뜻함과 진정성은 여전히 강력한 마케팅 자산으로 남아 있다.